2025. 8. 15. 11:46ㆍ시사

2025년 8월 14일, 서울 삼청동 주한 베트남 대사관에서 호찌민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는 소식은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국빈 해외 정상인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방한 첫 일정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베트남인들에게는 '국부'이자 '영웅'이지만, 과거 베트남 전쟁에 파병했던 우리 국군에게는 적군의 최고 지휘관이었던 호찌민. 냉전 시대의 적이 이제 중요한 경제 협력 파트너가 된 현실 속에서, 삼청동의 호찌민 동상은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삼청동 호찌민 동상, 그 의미는 무엇인가?
주한 베트남 대사관에 세워진 호찌민 흉상은 베트남인들에게는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이끈 지도자를 기리는 당연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패망한 남베트남 대사 관저' 자리에 '공산 통일을 이끈 지도자'의 동상이 들어섰다는 것은 과거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함께 현재의 복잡한 국제 정세를 상기시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최근의 국내외 상황과 엮여 더욱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이재명 정부의 대북 평화 강조: 문재인 정부 때도 유지했던 대북 방송 중단, 전방 확성기 철거, 한미 연합 훈련 축소 등 대북 유화적 제스처는 과거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무력으로 병합했던 역사를 떠올리게 하며 '과민 반응'일지라도 우려를 낳습니다.
- 대통령의 '찬사'와 과거사 논란: 또 럼 서기장을 만난 이 대통령이 "베트남은 외국 군대와 싸워 이겨내고 통일을 이뤄낸 저력 있는 국가"라고 언급한 것은 베트남전 참전 국군 장병들에게는 힐난으로 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국내 '역사관 논란'의 연장선: 중공군에서 군가를 작곡하며 6·25전쟁 때 북한 측에서 참전했던 정율성 동상 복원 논란과 같은 맥락에서, 공산주의 지도자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자칫 과거사에 대한 왜곡이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우방국 베트남,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라는 현실
현재 베트남은 한국의 중요한 경제 협력 파트너입니다.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 진출해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으며, K-방산 수출에서도 중요한 고객이 되는 등 양국 관계는 외형적으로 매우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은 여전히 세계에 몇 안 남은 일당 지배의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신냉전 시대'를 맞아 미중 대결 구도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중국과 남중국해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은 한국의 입장에서 우방이면서도 동시에 언제든 국제 정세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 있는 복잡한 파트너입니다.
'불가근 불가원' 외교의 지혜가 필요한 때
이러한 상황에서 삼청동에 우뚝 선 호찌민 동상은 우리에게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외교적 지혜를 떠올리게 합니다. 지나치게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게 거리를 두면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신중한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실용주의 외교 강화: 베트남과의 경제 협력, K-방산 수출 등 실질적인 국익 창출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경제적 상호 의존도를 높여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가치 외교의 균형: 공산주의 국가라는 베트남의 체제적 특성과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경제 협력과 더불어 보편적 가치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한 관계를 추구해야 합니다.
- 안보 및 기술 보안 철저: 최근 K9 자주포 수출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첨단 기술 및 군사 기밀이 제3국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한 보안 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역사 인식의 균형: 베트남 전쟁 참전국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베트남 국민들에게 남긴 아픔을 직시하고 진정성 있는 관계 개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참전 용사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역사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는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유지해야 합니다.
- 국민적 이해와 공감대 형성: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정부의 외교 정책 방향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충분한 논의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결론: 과거를 잊지 않되, 미래를 향하여
삼청동의 호찌민 동상은 단순한 흉상을 넘어, 과거의 역사적 상처와 현재의 복잡한 국제 역학 관계, 그리고 미래를 향한 우리의 외교적 과제를 동시에 상징합니다. 베트남은 이제 우리의 중요한 파트너이지만, 여전히 다른 체제를 가진 국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양국의 발전을 위한 윈윈 관계가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국익을 위해 언제나 냉철하고 신중한 '불가근 불가원' 외교를 펼쳐나가야 할 때입니다. 특히 중국이나 북한으로의 기술 유출 가능성 등 안보와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철저한 단도리가 필수적입니다. 과거를 잊지 않되,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우리의 원칙과 가치를 잃지 않는 지혜로운 외교가 필요합니다.
※관련 기사 보기:
https://www.chosun.com/opinion/desk/2025/08/14/5FN4ORN6PNFJDNUET3OEQHWC3I/
삼청동에 우뚝 선 호찌민 동상 [데스크에서]
삼청동에 우뚝 선 호찌민 동상 데스크에서
www.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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